top of page

무제 

​나뭇잎 

"밥 먹을래?"

2주에 한번씩 민희가 은상에게 하는 말이다. 그 때마다 은상의 대답은 항상 같다. 나 약속 있어서 안돼. 그러면 민희는 그냥 그래? 알겠어 라고만 한다.  딱히 붙잡지도 않는다. 언뜻 보면 미련이 없어보인다. 언뜻 보면. 

지각이다. 고등학교 2학년 개학 첫날부터 늦잠을 자버린 민희는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다. 교실에 들어가보니 남은 자리라고는 맨 뒷자리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창가 자리 뿐이었다.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아, 혼자 앉으면 심심한데... 라고 생각하는 민희가 무색하게 민희의 옆자리는 금방 채워졌다. 

"안녕, 여기 앉아도 되지?"

민희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민희는 잘생겼네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앉아도 되지! 나는 강민희라고해. 근데 너 이름이 뭐야? 너 작년에는 못봤는데... 혹시 전학 왔어?"

"응, 나 오늘 전학왔어. 이름은 이은상이야."

혼자 앉을 줄 알고 걱정한 민희는 자기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1교시가 시작됐다. 개학날부터 정상수업이냐는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민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좋아하는 과목 외에는 모두 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민희는 오늘도 그럴 작정이었다. 그에 반에 은상은 오늘 수업하는 내용을 꼼꼼히 준비했다.  민희는 그런 은상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민희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아니... 그냥 그렇게 공부하는게 신기해서..."

수업 시작 후에는 민희는 그대로 잠들어버렸고 은상은 계속 수업에 집중했다. 빠른 듯 느리게 지나간 수업시간 뒤에는 점심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깨어난건지 민희는 은상에게 달라붙어 말을 걸었다. 

"은상아! 나랑 같이 급식 먹을래?"

"아, 아냐 괜찮아. 네 친구들이랑 먹어."

"혹시 내 친구들이랑 어색해서 그래? 내가 소개 해줄게. 같이 먹자!" 

"아니야. 나 진짜 괜찮아.  너희끼리 먹어."

이때까지만해도 민희는 은상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뭐, 안먹으면 안먹는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4월이었다. 새학기를 시작한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매일 잠만 잘것 같던 민희는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옆자리에 있는 은상의 영향이 컸다. 날씨, 민희의 태도, 은상의 학교 적응도 짧은 기간 동안 많은게 바뀌었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도 바뀌지 않은게 있었다. 은상은 민희와 급식을 같이 먹지 않는다. 민희가 한달간 매일 물어봤지만 은상의 답은 항상 똑같았다. 너희끼리 먹어. 슬슬 민희도 오기가 생겼다. 급식 한번 같이 먹는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래. 항상 민희는 생각했다. 매일매일 은상을 찾아와 같이 밥을 먹자고 조르는 민희에 못이겨 결국 새학기가 시작한지 두달 뒤, 민희와 은상은 같이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은상아, 너 왜 나랑 같이 급식 안먹으려고 했어?"

민희가 서운했는지 은상에게 물어봤다.

"그냥 어색해서."

"그게 다야?"

"응, 이게 다야."

은상은 웃으며 대답했다. 은상이 웃는 것을 본 민희는 속으로 얄미운데 잘생겼으니까 봐준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것. 민희는 은상에게 툴툴거렸다.

"너는 다 잘해주면서 밥만 같이 안먹으려고 하더라. 나 나름 니 첫 친구아니냐? 오늘까지도 안먹어주면 서운할 뻔 했어."

은상은 아무말 하지않고 웃기만 했다. 민희는 그런 은상의 속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은상의 속을 알고싶다고 생각했다

 

 

 

 

 

 

 


 

개학한지 3개월정도 됐을 때 였다. 슬슬 여름이 시작되는 때였다. 그리고 민희의 짝사랑이 시작되는 때였다. 

민희는 자취를 했다. 서울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민희는 고등학교는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덕에 상경해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은상도 민희와 같은 이유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고 있다. 민희집 맞은편에 은상이 살고 있었다. 둘은 등교도 같이 했다. 사실 민희가 은상에게 같이 등교하자고 졸랐다. 근데 민희가 항상 늦잠을 자서 실질적으로 같이 등교한 날은 얼마되지않는다.

"은상아... 오늘 왜 나 버리고 그냥 갔어..."

"너 오늘 늦잠 잤잖아. 초인종 눌러도 안나오길래 그냥 갔지."

그래도 버리고 가는건 너무했다아...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말하는 민희를 본 은상은 웃으며 민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겠어, 다음에는 너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게. 아마 이 때 민희는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민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여름 방학식 날이었다. 성적표를 받은 아이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성적이 올랐다며 좋아하는 아이, 오히려 떨어졌다며 시무룩한 아이도 있었다. 민희는 후자였다. 

"은상아 너 시험 잘봤어? 난 완전 망했다..."

민희는 책상에 엎드린 채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은상에게 물었다.

"아 은상아 나랑 오늘 밥먹을래?"

"나 오늘 약속 있어서 안돼."

단호한 말투였다.

"에잉 그래? 그럼 다음에 먹지 뭐. 그때는 같이 먹어줄거지?"

은상은 아무말도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민희는 그 미소가 부정의 의미라는 걸 알고있었다. 그저 씁쓸했을 뿐이다. 

 

방학이 시작된지 딱 2주가 되는 날이었다. 민희는 은상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아무 사진없는 프로필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카톡을 보냈다.

-은상아 내일 같이 밥먹을래?

왠일로 은상에게서 답장이 빠르게 도착했다.

-나 내일 약속있어. 미안해.

이럴줄 알았어. 민희는 실망했다. 친구끼리 같이 밥 한번 먹으면 어디가 덧나나... 민희와 은상은 서로 앞집에 사는 데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만나지 않았다. 은상의 일방적인 거절이었다. 민희가 2주뒤 같이 밥먹자고 물었지만 은상의 대답은 변하지않았다. 그렇게 개학이 다가왔다.

 

 

 

 

 

 

 


 

개학날이었다. 은상이 민희를 버리고가지않겠다고 말한 뒤로는 둘은 항상 같이 등교했다. 민희가 늦잠을 자는 날에도 둘은 함께 등교했다. 

"이제는 먼저 안가네?"

"니가 버리고 가지 말라며."

은상은 또 웃으며 이야기했다. 얘는 왜 말할 때마다 웃으면서 말하지. 사람 설레게. 민희가 항상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티내지않았다. 

 

민희는 은상의 미소를 좋아했다. 자신에게만 지어주는 미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세심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은상을 좋아했다. 자신의 말을 하나하나 들어주고 행동하는 은상을 좋아했다.하지만 민희는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민희가 하는 표현이라고는 2주에 한번 은상에게 밥 먹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은상의 거절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미련이 없어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련으로 가득차 있었다. 은상의 대답에는 다음에 먹자, 나중에 먹자라는 말이 포함 되어있지 않았다. 그저 나 그날 약속 있어라는 말 뿐이었다. 민희는 속으로 서운함을 삼켰다. 

사실 은상은 민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자기만 보면 나오는 그 눈빛을 어떻게 눈치채지 못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모른 척했다. 그래서 같이 밥먹자는 민희의 말을 거절했다. 무서웠다.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 민희에게 마음이 생길 것 같아서 무서웠다. 마음이 생길까봐라고는 했지만 사실 은상은 민희를 좋아했다. 은상은 자신이 민희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했다. 인정해버리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은상은 생각보다 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했다. 지금 은상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민희와 친구 사이로도 남지 못하는 것이었다. 민희가 2주에 한번씩 밥을 먹자고 물어볼 때마다 은상은 항상 고민했다. 한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냥 같이 먹을까. 하지만 결국 거절한다.거절하고 후회한다. 그냥 먹을걸. 그리고 이렇게 4개월이 지났다.

겨울방학식이 왔다. 그리고 민희가 은상에게 밥먹자고 물어보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2주에 한번 아침마다 들리던 밥먹자는 질문은 어디에도 있지않았다.  민희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방학식이 시작됐다.

"은상아, 벌써 겨울방학이래. 완전 좋다. 그치."

"응, 좋다."

"방학 시작하면 뭐할거야?"

"나는... 잘 모르겠어. 너는?"

"나는 엄마 보러갈거야. 우리 방학 동안에는 못 만나겠다."

민희의 표정은 약간 아주 약간 슬퍼보였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약간이었다. 하지만 은상은 눈치챘다. 순간 은상은 깨달았다. 얘는 앞으로 나한테 밥먹자고 물어보지 않겠구나. 2주전 그 말이 마지막이었구나. 그리고 둘 사이에는 실없는 대화만 흘렀다. 은상의 속은 타들어갔다. 그렇게 방학식은 끝나고 결국 민희의 입에서는 밥먹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은상아, 나 갈게."

민희야 잠깐만. 은상이 민희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민희에게 말했다.

 

"민희야 같이 밥 먹을래?"

© love4sgcp.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