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kinda crazy
닻별
밥 먹을래?
사주시는 거예요?
응.
엉?
밥 한 번 얻어먹기는커녕 약속 잡기가 초절정 인기의 꿀 교양 수강 신청보다 어렵다는 이은상이 밥을 사준단다. 그것도 단둘이.
부드럽지만 얄짤없이 군다는 게 뒤에서 나오는 그에 대한 이야기였다. 얄짤이며 초절정이며 조금의 오바 보태서 한 말이지만 여하튼 둘 다 얼추 맞는 얘기였다. 이은상은 전공 교수의 총애를 받으면서 학교 중앙 댄스 동아리에서 인정도 받는 그야말로 우리 대학교 화학공학과 2학년의 자랑이었으니까. 대신 전해드립니다 혹은 에타를 조금만 둘러봐도 느낄 수 있는 이은상의 존재감. 대전의 제보를 좀 빌리자면 학식 맛없다며 찡얼대는 것도 잘생겼고 강의실 문 뒷사람 배려해서 잡아주고 나가는 거 너무 스윗하고 교수님께 예의도 바르고 뭐 아무튼 대충 봐도 핫피플이다 싶은 증언만 가득했다. 처음 입학했을 때, 그래봤자 연예인도 아닌데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무의식 속 의심은 곧 경악으로 번졌다. 개강 첫날부터 동방에 이렇게 신입생이 많아도 되냐고. 문을 열자마자 살살 뒷걸음칠 치던 강민희를 어떤 금발 머리 한 선배가 붙잡아서 끌고 의자에 앉혔다. 강민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러세요? 뭐지 저 도망가고 싶어요. 강민희 표정 같은 건 하나도 안 중요한 금발 머리 선배는 신입생 꼬시려고 온 휘황찬란한 멘트의 멘트를 다 끄집어냈는데 그 중심에는 SNS 유튜브에서 유명하다는 이은상이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댄스 동아리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은 다 이은상에 대한 어떤 우상 같은 것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은상 얼굴 한 번 보려고, 이은상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 물살에 좀 끼여보려고 하는 1학년들이 적은 가입 신청서가 다였다. 굳이 관련지어 보자면 강민희는 1번. 유튜브에 나오는 얼굴이랑 실물이랑 똑같은지 궁금해서. 1번도 1번 나름대로 타인과 좀 다른 게 있었다면, 강민희는 이은상이 어느 소속사 보컬로 간다더라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다더라 하는 꼬리 긴 소문들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었다. 댄스 동아리가 유명해서 들려고 했더니 그 유명세의 출처가 다 이은상이었을 뿐.
일말의 기대 없이 받아치듯 던진 멘트를 이은상이 미끼 물듯 물었다. 아니 사실은 강민희가 물렸다. 뭔가 목적이 있어도 단단히 있다. 작정하고 밥 사주겠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 선배가 갑자기 로또가 터졌나 싶어서 물었다. 선배 혹시 뭐 로또 그런 거 당첨된 거예요? 드디어 소속사를 들어가는 게 아니라 차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는데 이은상은 웃기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너랑 밥 한번 먹고 싶어서. 나랑 왜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간신히 참았다. 벌써 반 학기가 지났는데 말 한 번 안 걸어주다가 지금? 좀 의아했다.
연습할 때 보니까 춤 되게 잘 추더라.
강민희는 제 춤 봐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내 춤은 또 언제 본 거지? 안 그래도 말 거는 인간들이 많아서 부담스러워할까 봐 이은상 근처로는 눈길도 안 줬는데 이은상은 내 춤을 어떻게 또 봤다네. 좋은 건가? 강민희는 이도 저도 아닌 표정을 하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절대 감사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 표정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은상은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채 그래서 언제 사줄까? 하고 물었다. 밥 사주는 사람 좋은 사람인데 왠지 찜찜했다. 말도 안 터본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까 수상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 대화의 꼬리를 싹둑 끊어야만 할 거 같았다. 일단 지금은 말이다.
저 시간표 좀 보고 연락 드릴게요. 다음 수업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민희야 너 내 번호 알아?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문장을 애써 못 들은 척 수업이 급한 척 뛰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번호도 없는데 연락한다는 말만 던지고 탈주한 꼬락서니가 웃겼다. 어찌 보면 거절의 의사 표시를 간접적으로나마 한 것 같기도 하고. 남은 수업 같은 거 없었다. 1교시 수업 후 죄다 공강인 이 무지막지하게 답 없는 요일을 춤으로 불태워보려고 했는데 저 형 때문에 망했다.
"너 요새 왜 동방 안 가냐? 그 댄스 동아리."
"여기가 좋아."
"과방 영원히 이용할 일 없다며."
"이제부터 동기들을 좀 사랑하기로 했어."
"그, 이은상?"
과방 소파에 녹아내린 듯 누워있던 강민희는 이은상 세 글자가 들리면 죽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미쳤어? 왜 그래? 동기 A는 진심이었다. 강민희도 진심이었다. 과방으로 도망치듯 오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동방이 훨씬 크고 시원하고 쾌적하고 산뜻하고 활기찬데 눅눅하고 시끄럽고 좁아터진 과방에 눌러앉을 사유는 전혀 없었다. 원인은 오직 하나. 세 끼마다 생각나는 그 선배의 밥. 밥. 밥. 이은상이랑 멱살 잡고 싸운 것도 아닌데 동방 가기가 좀 그랬다. 그냥 자격지심 비슷한 거였다. 누가 봐도 어이없는 어제의 제 태도에 분명히 이은상은 속이 상했을 것이므로. 당당하게 동방으로 발걸음을 해보려고 해도 왠지 그 시간대 하필 이은상이 운명처럼 있을 것만 같고 그랬다. 무의식적으로 동방에 가다가도 이은상 생각이 나면 6층까지 걸어 올라왔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가기 일쑤였다. 학생 회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결론적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돌리기엔 똥개 훈련 비슷한 운동량이었다. 강민희는 몸도 마음도 탈탈 털려 늘 처진 어깨로 과방에 컴백했다.
"그 형은 왜?"
"그 동아리 제일 쩌는 아웃풋이 이은상 형 아니야?"
"맞는데 왜?"
"그냥 말해본 건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격지심 비슷한 거였다.
*
오늘은 반드시 그 부끄러움과 어긋난 양심을 청산하리라 마음먹은 강민희는 당당하지만 조금은 어색한 발걸음으로 동방을 찾았다. 이은상을 어쩌다 보니 피하면서 다닌 지가 벌써 3주였다. 이대로 가다간 동방에 가입비 기부하고 졸업한 부원 1로 남을 것만 같았다. 오늘은 마주쳐도 당당해지자. 번호 어쩌고 하면 번호 달라고 하자. 쫄릴 거 없다 강민희!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민희는 마침내 동방 문을 열었고, 수업이 대충 다 끝났을 지금 시각 오후 4시 45분, 절묘하게도 이은상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늠이 안 갔다. 이걸 또 이렇게 미룬다고. 강민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민희야 우리 먼저 갈게! 동방 문 꼭 잠그고 가."
"네. 안녕히 가세요."
남아있던 선배들까지 모두 집으로 돌아간 지금 시각 오후 7시 25분. 별로 춤이 끌리는 날도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연습에 집중이 잘 됐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더 좋은 대학 가는 거였는데. 강민희는 잠깐 하다 말 후회를 육성으로 중얼거리다가 문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뭐 놔두고 가셨나? 아까 마지막으로 나간 선배들인가보다 싶어 강민희는 재빨리 동방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민희?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이은상이었다. 의외의 인물이다 싶었는지 이은상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 강민희는 1달 치 당황함을 방금 다 느꼈다.
"이 시간에 있네? 뭐해?"
"안무 따는데 한 동작이 계속 걸려서요.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어요."
"밖에 되게 어두컴컴해. 너 집 어디야?"
"저 기숙사 살아요."
"그럼 다행이다."
근데 안 되는 동작은 뭔데? 나 전공 책 놔두고 간 거 가지러 왔는데 도와주고 가고 싶어서. 이은상은 한 대만 내리쳐도 머리에 큰 충격을 줄 것 같이 두껍기 짝이 없는 전공 책을 가볍게 흔들었다. 가는 길 별로 막고 싶지 않았는데 한 편으로는 나름 실력자한테 레슨 비슷한 거 받는 기회 아닌가 싶어서 우물쭈물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넘겼다. 거기 2분 8초에 다리 쪽이 자꾸 엉켜요. 어디 보자며 이은상은 몸을 가까이 해왔다. 영상은 하나고 보는 사람은 두 명인 탓에 6세대 아이패드가 좁아터진 액정 같이 느껴졌다. 이 선배랑 머리를 맞대고 이러고 있다는 게 좀 신기했다. 습관인지 이은상은 영상을 보다 말고 계속 머리를 쓸어 넘겼다. 쓸어 넘길 때마다 코에 익은 샴푸 냄새가 풍겼다. 나도 머리 감고 싶다. 강민희는 3시간째 연습 중이다. 땀에 개쩔었다.
"왼쪽 팔이랑 오른쪽 다리랑 같이 나와야 해. 헷갈릴 만 하다."
이은상은 영상 대충 두어 번 돌려 보고는 곧바로 안무를 재현해냈다. 와. 이래서 이은상 이은상 하는구나. 춤 신 타이틀이 그냥저냥 붙여지는 건 아닌가 보다. 유튜브에서 이름 떨치는 것도 아무나 할 수는 없는가 보다. 강민희는 그 '아무나'나 '그냥저냥'은 되기 싫어서 이은상이 가르쳐 주는 안무에 집중했다. 곧잘 해내자 이은상은 뿌듯하다는 듯 말간 미소를 띠고 다시 전공 책을 챙겼다. 존나 무거워 보인다. 두 손 가득. 캐리어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선배 혹시 멀리 통학해요?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닌데 진짜 걱정되는 건 맞아서 물었다. 이은상은 네가 나한테 궁금한 게 생겼냐는 표정을 하고는 턱으로 창문 쪽을 가리켰다. 나 바로 앞에서 자취해. 강민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진짜 부러워요'라고 말했다. 거주지에 대한 대화가 대충 끝나자마자 분위기가 바삭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이은상을 보내줘야 마땅한 타이밍이다. 강민희는 친절히 동방 문까지 열어드리며 이은상을 밖으로 모셨다.
"요새 밤에는 되게 쌀쌀한데 더 추워지기 전에 들어가세요!"
"민희야. 너 먹고 싶은 거 없어?"
"저……, 음."
"밥 싫으면,"
"네."
"빵 먹어도 돼."
빵이라니. 이은상 자존심 내려놓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선배 건강 걱정하는 후배 마음은 모르고 그놈의 끈질긴 밥 약속 얘기를 방금도 그렇고 하루에 마주치기만 하면 세 댓 번은 해댔으니까 이제 안 받아주면 강민희는 정말 예의범절도 모르는 놈이 되는 거다. 가입비 20,000원이나 주고 얻은 소중한 동방을 피해 다니는 것도, 좁디좁은 공대 구역에서 붉은 염색모만 보면 몸을 돌리는 것도 이제는 좀 관두고 싶었다. 밥약 까짓거. 선배랑 친해지면 좋은 거지 민희야. 이게 흔한 기회야? 강민희는 자가 최면을 걸었다. 곧이어 이은상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빵은 무슨요. 한국인은 밥심이죠. 이은상은 종일 지뢰라도 되는 양 저를 피해 다니던 놈이 별안간 태도를 바꾸는 꼴이 당황스럽지도 않은지 곧바로 기뻐 보이는 얼굴을 했다.
"아, 번호 좀 주면 안 될까?"
강민희는 흠칫했으나 약속이 잡혔으니 당연한 순서라 생각하고 손을 내밀었다. 번호 찍어드릴게요. 이은상 핸드폰 연락처 안에 스스로 제 이름을 저장하고 있는 이 상황이 오묘했다. 이건 무슨 진짜 저 선배랑 점점 친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민희 세 글자 앞에 19 화공이라는 딱 봐도 형식적이고 공적인 수식어를 달아놓았음에도 괜히 뭔가 시려오는 이 기분은. 제 임무를 마친 이은상은 핸드폰을 돌려받자마자 그만 가보겠다며 전공 책 든 손을 깃털처럼 흔들어 보이며 유유히 사라졌다. 폭탄 세일로 난리가 난 마트 한 바퀴라도 돈 기분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는 비유가 맞다. 이은상 선배. 시끄럽지도 않고 정신 사납지도 않고 되려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다정의 아이콘. 강민희에게는 그저 졸졸졸 따라다니는 말티즈같이 느껴졌음을. 이은상은 영원히 몰라도 되는 이야기.
*
인문대 앞에서 6시에 볼래?
저장만 해놓았는데 왜인지 계속 신경 쓰이는 번호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아무 날이나 괜찮아요 입 턴 게 죄였다. 정말 아무 날 아무 시간에 부르시구나. 강민희는 가볍게 한숨 한 번 쉬어준 후 답장을 했다. 넵. 그냥 선후배 사이로서 밥 한번 먹자는 건데 괜히 키패드를 치는 손가락이 떨렸다. 선 보러 가냐고. 왜 긴장해? 강민희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뱉기를 반복했다. 정확히 이은상이 인문대 계단 쪽에서 내려와서 강민희 얼굴 앞에 서 있기 전까지. 그다음에는 긴장 안 했냐 물으면 오산이다. 숨 쉬는 건 모르겠고 일단 입술부터가 바싹바싹 자꾸만 건들고 싶었으니까.
"뭐 먹을래?"
"저는 다 괜찮은데!"
"데리야끼 막창 저번 주에 먹었는데 맛있더라. 그거 먹을래?"
"좋아요."
데리야끼 막창. 나는 어제 먹은 거. 강민희는 타이밍이 더럽게 안 맞다고 생각한 지 얼마 안 되어 데자뷔를 느꼈다. 진심으로 그냥 막창도 아니고 데리야끼 막창 말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이은상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 꼭 어제 갔던 그 가게 같아서 강민희는 일찌감치 이은상 꽁무니 뒤만 총총 쫓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강민희의 체크 카드가 잔인하게 일시불로 그였던 그 더럽게 비싼 데리야끼 막창집이 맞았다. 어색한 공기가 막창집의 환풍구를 타고 떠다닐 무렵, 강민희는 침묵을 깨기 위해 물잔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선배 근데 갑자기 왜 밥 사주시겠다고 하신 거예요?"
"그냥 먹이고 싶어서."
"진짜요?"
강민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이은상은 몸을 곧게 세우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우물쭈물하는 얼굴 모양새를 보아하니 그냥 먹이고 싶단 말은 그냥 나온 거짓말이겠거니 싶었다. 혹시 뭐 나한테 원하는 거 있나? 아니면 찍혔나? 나... 대학교 와서 찍힌 거? 혹시 동방에서 카페라떼 마시고 컵 한 번 안 치웠다고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연습할 때 너무 눈에 튀어서 거울 볼 때 방해되셨나요. 그렇다면 앞으로 애국자 패션은 삼가겠습니다. 강민희는 동방 갈 때마다 꼭 고수하는 스타일이 있었다. 상의는 빨간 반팔 티에 하의는 아디다스 파란색 컬러 팬츠. 사실 수업 들으러 갈 때는 절대 안 입는데 이상하게 동방만 가려고 하면, '연습하러 가니까 옷 갈아입어야지' 하고 옷장을 들출 때마다 자꾸만 그 조합이 끌린다는 거다. 되게 내 얼굴에 잘 받는 것 같고. 자의식 과잉인가? 강민희의 성찰이 옷장까지 닿았을 때쯤 이은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나 싫어하는 줄 알았어. 하하……."
"네?"
"그래서 말 걸까 말까 고민 많이 했어. 너랑 친해지고 싶었어."
"……"
이은상이 싫어서가 아니라 바쁜 선배님 피곤하게 만들기 싫어서 강민희 차원에서는 배려해드린 거였는데. 새로 들어온 19들은 죄다 춤꾼 이은상에게 한 수 배워보려고 발악을 했고 자칭 배려심 있는 19 강민희는 이 단순 시각차에서 비롯된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그러셨구나. 밥을 못 먹어서 안달이었던 게 그래서였구나. 심오하기가 세계 7대 불가사의와 다름이 없었던 궁금증이 실타래 풀리듯 단순히 풀려버렸다. 진작에 말씀하시지.
안 그래도 인기 많으신데 저까지 질척대면 힘드실까 봐요.
아. 음. 막창 타겠다.
강민희는 손으로는 집게를 잡아 막창을 뒤집었다. 안 믿는 거 같아서 몇 마디 더 했다. 저 선배 싫어하는 거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좋아해요. 이은상은 웃고 있었지만 회피했다. 그럴 수 있지. 강민희는 이해했다. 그 지긋한 오해가 얼마나 빠르게 쪽팔림으로 변했을지 예상했다. 이은상은 얼굴을 붉혔다. 괜히 딴소리하는 게 맞았다.
*
"이은상 선배랑 어떻게 밥 먹었냐?"
"사주셔서."
"1학년은 지갑 안 들고 다닌다 이거지."
"먼저 사주겠다고 하셨는데."
"엥?"
연습하러 동방에 올 때마다 강민희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강민희는 나름 유명인이 되었다. 동아리 안에서만큼은. 강민희 앞에는 종종 '그 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밥 사준 후배'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고학번 선배들도 아 네가 그 밥 얻어먹은? 으로 강민희를 알아봤다. 제 이름이 무슨 성은 밥이요 이름은 얻어먹은 인가요.
이은상은 그 오해를 깨고 난 후에도 예전처럼 강민희를 대했다. 그렇게 친밀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사이. 하지만 늘 친절은 했다. 무슨 기브 앤 테이크라도 하듯 인사를 건네고 말을 주고받았다. 나였으면 쪽팔려서 동방 안 나왔을 거 같은데. 강민희는 동방에 게임 출석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 이은상을 보며 존경심마저 들었다. 롤모델에 세종대왕 정약용 적을 게 아니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바로 앞에 있었는데 말이다.
강민희는 그 오해를 깨고 난 후에는 예전처럼 이은상을 대하지 못했다. 차라리 아예 친구 같거나 알기만 하는 지인 1처럼 어색했으면 좋겠는데. 늘상 친절하고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거는 이은상 때문에 꼭 죽을 거 같았다. 진실을 알기 전에도 계속 신경 쓰이던 사람의 속내가 사실은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건 대체 뭘까. 신경을 넘어 무엇을 빼앗긴 듯 멍했다. 갑과 을이 바뀌었다. 적어도 강민희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