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소설의 결말은
이바요
“ 밥 먹을래? "
어느 날 학교 점심시간 이은상이 강민 희에게 대뜸 한 말이었다. 멜로 눈빛까지 풀장착하고 던진 말, 일단 뭐 앞에선 허허 웃어넘겼지만 마음속으로는 저 또라이는 뭘까 하는 말만 계속 곱씹는 민희였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저 한마디가 전학 오고 이은상한테 처음 들은 말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민희는 얼마 전에 편입으로 이은상과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원래는 일반고에 다녔지만 소속사의 권유로 예술계 고등학교로 편입을 결정했고, 결론은 붙었다.
" 안녕, 내 이름은 강민희고 편입으로 들어왔어. 잘 부탁해. "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민희가 본 것은 형형색색의 머리 색깔들, 그냥 일개 일반고 다니던 그에겐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거기서 이랬으면 싹 다 선도에게 걸려서 학생부로 집행 감이었으니까.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빨간 머리하고 턱 괸 자세로 저 멀리서 민희를 뻔히 바라보는 한 남자애. 아까부터 계속 민희만 본다. 저 애 옆에만은 진짜 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야속하게 옆에 앉으라고 하는 담임은 이 순간 민희에겐 가장 원망스러운 사람 되시겠다. 진짜, 딱, 마침, 기가 막히게 왜 그 애 옆자리가 비었는가에 대해 고뇌하다 일단 미소를 유지하고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 나쁘게 지내서 좋을 거 없지. 인사라도 해볼ㄲ, 미친놈아 갑자기 왜 엎드리는데.
민희의 어이가 곱게 접어 하늘로 승천하는 순간. 얘 첫인상이 그렇게 좋진 않았고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백만 번 곱씹으면서 민희는 애꿎은 샤프심만 톡톡 뺐다가 넣었다가 했다.
아, 부러졌다.
*
다음날, 그 다음날, 그리고 그렇게 1달이라는 시간이 쌓였고 맨날 점심시간 때 애들이 다 나가면 은상이는 민희한테 민희야, 우리 밥 먹을래? 급식이 맛없어? 아니면 다른 거? 이런 말만 하니 우리의 강고딩 슬슬 짜증이 난다.
내가 밥 안먹는건 친구 없어서 그런 건데. 얘가 계속 내 자존심을 찌른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잖아. 근데 은상아 너는 왜 나만 보면 밥 이야기야? 우리 제대로 인사 한 번도 안했는데.
" 나 너한테 관심 있어. "
" 야야, 말 돌리지마. "
" 말 돌리는 거 아닌데, 진짠데. "
저 저 미친놈 아무튼 진짜 감당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이해줄라고 생각에 생각을 해봐도 이은상은 뭐지 싶다. 내가 정색하고 말해도 실실 웃고는 알았어~, 하고 넘기는데 내가 뭐라 해봤자 지 듣고 싶은 거만 들을게 뻔한데.
*
내가 관심 있다고 한마디 툭 던지니 강민희의 눈이 똥그래졌다. 귀여웠다. 누구한테 말하면 미친놈이라고 욕을 들을 것이 뻔하지. 실제로 김창진한테 강민희 귀엽지 않냐고 물어봤다가 마치 ‘쟤 갑자기 왜 저래’를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눈초리만 받고 끝났다. 나는 다이어트 때문에 안 먹어서 항상 점심시간에는 반에서 혼자였다. 그게 익숙했고, 일상이었다. 근데 지금은 한명이 더 있다.
사실 처음에 내가 밥 이야기 꺼낸 건 애들 다 나갈 때 점심 안 먹고 맨날 반에서 버티는 강민희때문이었다. 덕분에 점심시간에는 강민희와 나 둘이었고 나는 그 어색함이 싫었다. 맨 뒷자리인 내 자리에서 바라본 교실은 넓고 넓었다. 쓸쓸했다.
처음엔 정말 사적인 감정 하나도 없이 그냥 궁금해서 그랬는데 어느 날을 기점으로 그냥이라는 감정이 강민희라서 라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그냥 궁금해’가 아닌 ‘강민희라서 궁금해’, ‘그냥 귀여워‘가 아니라 ‘강민희라서 귀여워‘... 이정도? 나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 가끔 강민희는 저 이름이 불릴 때마다 저렇게 흠칫 놀라는데 보면 꼭 새끼 강아지 같아서 귀여워 죽겠다. 가끔 애들은 내가 강민희만 보고 있으면 놀린다.
“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뚝 떨어지시네요. 이은상씨~ ”
“ 다른애였으면 새끼 강아지가 아니라 새끼 딱 그 정도였을걸? ”
“ 야 냅둬 냅둬 첫사랑 찾았다잖냐. ”
옆에 강민희 다 듣고 있는데. 듣던 말든 상관없다. 쟤도 다 알고 있을 텐데 뭐.
내 생애 사람 하나에게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진심이다. 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다가가면 쟤는 받아 줄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를 알까 싶기도 하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 보이던데... 사실 후회중이다. 진짜 쟤 말대로 인사부터 제대로 했어야하는건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겠다.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인사부터 정석대로 했을 것인데. 강민희는 아까부터 나를 계속 경계만하는거 같다. 야, 한번만 인상 좀 펴주라. 웃는 거 보고 싶어 민희야.
*
“ 민희야, 이제 나 좀 봐주라. 응? ”
“ 뭐래 은상아 넌 처음부터 아웃이었는데. 인사도 안하고 대뜸 그런 소리 하는 놈이 어디 있냐?”
“ 여기 있잖아. ”
“ 웃겨 진짜. ”
이은상과 강민희는 흔히 어사라고 부르는 즉, 어색한 사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지금 밥 같이 먹는 급식메이트가 되었다. 피곤하다. 이렇게까지 붙는 애는 강민희에게는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샌가 이은상에게 마음을 열고 기다리는 건 민희였다.
나는 요즘 은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나한테 ‘밥 먹을래?’ 라고 물어만 보던 애가 이제는 자기랑 밥 먹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방과 후에는 카페가자 아이스크림 사줄게 나랑 놀자 조금만 같이 있어 달라 난리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안무 트레이너님께는 학교 상담 때문에 못 간다고 문자도 수십 번 보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쳤다. 연습을 빠진다. 고작 이은상이라는 존재 하나 때문에 난 연습을 빠진다. 하지만 왜인지 이 행동이 후회스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은상이랑 같이 있는게 편해졌다. 그냥, 이유는 없고 이은상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나는 그 편함을 찾는다.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지금이 한순간의 추억으로 돌아갈까 무서워 이제는 그 두려움을 끝내려고 한다.
“ 나 이제 연습 못 빠져.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야. 너는 나 말고 친구 많잖아, 이젠 다른애들이랑도 놀아. 왜 항상 나만 바라보냐, 꼭 나 좋아하는 거같이. ”
“ 몰랐어? 난 네가 다 알고 받아주는 줄 알았는데. ”
“ 장난치지 말고. ”
“ 민희야, 나는 너한테 한 번도 장난이었던 적 없어. ”
민희의 앞으로 척척 걸음을 옮기던 은상이 어느 샌가 뒤를 돌아 가만히 서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들은 듯 땅만 바라보며 걷던 민희가 고개를 들자 시선의 끝에는 저를 보며 웃고 있는 은상이 있었다. 마치 전학 온 그 첫날처럼.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고만 서있어. 나 안아줘야지 은상아.
지는 저녁노을 아래 그들이 마주 서있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소설 속에 필연적인 한 장면이었음을.